"인디저너스는 무역과 상업의 한복판에서 능동적으로 움직인 주체였다."
아즈텍 문명 연구 권위자인 캐럴라인 도즈 페넉(영국 셰필드대 교수)은 신간 『야만의 해변에서』(까치)를 통해 대항해시대를 오직 유럽의 ‘발견자’ 시선으로만 조명해온 기존 역사 인식에 도전한다. 저자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목격자이자 참여자’로 자리매김시키며, 그들이 유럽과의 접촉 속에서 단순한 정복 대상이 아닌 외교적 주체였음을 입증하고자 한다.
책은 대항해시대 당시 유럽에 발을 디딘 수많은 원주민들의 존재를 소개한다. 이들은 외교사절, 통역사, 작가, 의사 등으로 활동하며 유럽 문명과 능동적으로 교류했고, 때로는 이를 자신들의 생존과 공동체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했다. 예를 들어, 아즈텍을 무너뜨리는 데 자발적으로 스페인과 동맹을 맺은 틀락스칼라족, 펠리페 2세 앞에서도 당당히 외교를 수행한 마야 지도자, 그리고 스페인 왕실에 교회 건립 자금을 끊임없이 요청한 라디노의 사례가 그것이다.
또한 저자는 수입품 목록, 회계 장부, 칙령, 청구서 등 방대한 사료를 토대로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식민화의 틀 안에서도 스스로의 선택과 전략으로 유럽 세계와 거래하고 적응해나갔던 모습을 복원해낸다.
『야만의 해변에서』는 단순한 피해자 프레임에서 벗어나,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식민주의의 충격 속에서도 능동적으로 세계사를 만든 존재였음을 설득력 있게 드러낸다. 아울러 오늘날 유럽과 미국 박물관에 여전히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원주민 유해와 유물을 지적하며, 식민주의의 잔재가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도 고발한다.
이 책은 대항해시대의 새로운 시선과 함께, 우리가 잊고 있었던 세계사의 또 다른 주역을 되새기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