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지 기자 출신 백기철 조선대 객원교수가 독일 베를린 장벽길을 도보로 완주한 기록을 담은 책 『베를린 장벽길 산책』(솔과학)을 출간했다. 이 책은 2023년 저자가 체험한 160km(약 400리)에 달하는 베를린 장벽길 여정을 따라가며, 분단의 상처와 시민들의 용기, 그리고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함께 담아낸 답사기다.
베를린 장벽길은 독일 분단 시절 서베를린을 둘러싸고 세워졌던 장벽을 따라 조성된 길로, 지금은 통일 독일의 평화와 치유의 상징이자 시민들의 산책로로 자리잡았다. 백 교수는 이 길을 걸으며 “장벽이 무너지고 자유롭게 넘나드는 사람들과 달리, 장벽 주변에 서식하던 토끼들은 삶의 터전을 잃었다”는 일화를 통해 분단의 상흔과 그 이면을 조명한다.
책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닌, 분단의 역사와 한반도의 현실을 성찰하는 인문적 여정이기도 하다. 저자는 베를린의 풍경 속에서 우리 사회가 품은 분단의 현실을 떠올리고, 언젠가 사라진 휴전선 자리에 ‘평화의 길’을 만들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전한다. 그는 “통일이 아니더라도 함께 살아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답사기로서의 기능도 충실히 수행한다. 책은 ‘시내 루트’ 6개 코스, ‘남쪽 루트’ 3개 코스, ‘서쪽 루트’ 5개 코스 등 총 14개 코스를 소개하며, 코스마다 인근 레스토랑과 관광지 정보도 곁들였다. 특히 저자가 현장에서 직접 촬영한 100여 점의 사진과 지도 자료는 독자에게 생생한 현장감을 전달한다.
흥미로운 점은 시간 순서가 아닌 ‘기억의 강도’와 ‘상징성’에 따라 서술이 구성됐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를 통해 독자가 단순한 공간 이동이 아닌, 역사를 되새기고 미래를 그리는 ‘사유의 순례’에 동참하길 바란다고 말한다.
『베를린 장벽길 산책』은 분단과 통일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담담히 걷고, 따뜻하게 바라보며 풀어낸 한 권의 인문여행서로, 지금 우리가 서 있는 현실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