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진흥왕의 여름 순찰길에서 얼음 띄운 메밀국수 한 그릇이 냉면의 기원으로 전해진다.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명예교수 강명관은 이 전설에서부터 진주냉면의 부활, 물냉면의 등장, 지역별 냉면의 변화를 따라가며 냉면의 역사를 문화사적 시각으로 풀어냈다. 그의 신간 『냉면의 역사』(푸른역사)는 한 그릇의 음식 속에 담긴 문학, 사회, 과학, 경제의 층위를 탐구하며, 냉면이 한국인의 일상과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었음을 보여준다.
책에 따르면 냉면의 대중화는 단순히 맛의 전파가 아닌 사회사적 사건과 맞물려 있었다. 해방 직후인 1946년에는 돼지고기 부패로 인한 식중독 문제로 ‘냉면 제조 및 판매 금지령’이 내려졌고, 일제강점기에는 냉면 가격 동결을 피하려는 업자들의 편법이 문제 되자 조선총독부가 직접 가격과 면의 양을 통제하기도 했다.
냉면이 산업으로 자리 잡으며 노동조합도 등장했다. 1925년 평양에서는 105명의 면옥 노동자들이 참여한 ‘면옥노동조합’이 결성돼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는데, 이는 한국 외식산업 최초의 노동운동으로 평가된다. 강 교수는 반죽꾼, 발대꾼, 고명꾼, 배달부 등 냉면 한 그릇을 완성하는 사람들의 노동 현장과 권익 투쟁을 세밀하게 추적한다.
『냉면의 역사』는 음식의 기원을 넘어 그것을 만든 사람과 제도, 그리고 문화의 변천을 함께 조명한다. 15세기 조리서 『산가요록』, 『음식디미방』, 『계미서』 등 고문헌을 통해 선조들의 국수 조리법을 살펴보고, 조선 인종 시기의 『묵재일기』에는 “냉면을 먹었더니 발바닥이 차가워졌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고려 문인 이색이 회화나무 잎즙이 들어간 ‘도엽냉도’를 노래한 시, 장유의 『자줏빛 장물 냉면』, 이광수의 『남유잡감』, 이효석의 『유경식보』 등에도 냉면은 시대의 정서와 함께 등장한다. 강 교수는 이러한 문헌을 통해 냉면이 단순한 여름 별미가 아닌, 역사와 사회, 계급과 민중의 삶을 담은 ‘한 그릇의 문화사’임을 보여준다.
냉면 한 그릇에는 단순한 맛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그것은 시원함을 넘어, 시대의 온도와 사람들의 숨결을 함께 담고 있는 한국인의 기억이자 문화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