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무더위를 잊기 위해 공포영화를 대신해 책장을 펼쳤다가, 이불 속에서 몸을 웅크린 채 밤을 보내게 될지도 모른다. 해가 밝을 때 읽기를 권하고 싶은 책이 있다. 소명출판에서 출간된 『에도괴담걸작선』이 그것이다.

이 책은 일본 괴담의 전성기였던 에도시대(1603~1868)를 배경으로 한 30여 편의 공포 이야기를 담고 있다. 편저자 쓰쓰미 구니히코 교토세이카대 명예교수는 유교 이념에 기반한 도쿠가와 막부의 억압 속에서 고통받았던 약자, 특히 여성들이 괴담 속 원귀의 형상으로 살아남았다고 분석한다. 당시 여성들은 가혹한 현실과 억눌린 감정을 원한의 형상으로 승화시켜, 괴담의 중심 서사를 이끌었다.

책 속 이야기는 ‘여자들의 질투’, ‘명문가의 붕괴’, ‘슬픈 사랑 이야기’, ‘인과응보’ 등 다섯 가지 주제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로 치정에서 비롯된 원혼의 복수가 중심을 이룬다. 첩과의 관계에 빠진 남편 대신, 원한을 품은 아내의 귀신이 첩을 해코지하는 이야기들이 반복된다. 이처럼 에도 괴담은 단순한 공포를 넘어, 감정의 깊이가 만들어낸 영적 존재가 현실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묘사된다.

작품들 속에는 인간의 광기와 비극, 그리고 사회적 억압에 대한 통찰이 녹아 있다. 시신 훼손이나 피로 뒤덮인 장면 등은 영화 못지않은 잔혹함을 선사하고, 읽는 이로 하여금 상상력의 공포를 자극한다. 한밤중 책장을 덮은 뒤 귓가를 울리는 환청이 들릴지도 모른다.

괴담의 천국이라 불리는 일본 특유의 신과 영에 대한 믿음, 범신론적 세계관은 애니메이션 '가치아쿠타', '블리치' 등 현대 콘텐츠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에도괴담걸작선』은 그런 세계관의 기원을 이해하고, 괴담이 사회의 거울로 기능해왔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뜨거운 여름, 한낮의 햇살 아래서라면 이 책이야말로 더위를 잊기에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밤중이라면, 두꺼운 이불 속에서 읽을 각오를 하는 편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