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손에 들고 읽는 책은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형태로 자리 잡았을까.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의 교수가 쓴 한 책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역사 속 장인들의 삶을 통해 풀어낸다. 1490년대 런던에서 활동한 네덜란드 이민자 윈킨 드워드부터 2020년 뉴욕의 소규모 출판사 블랙매수에 이르기까지, 제책의 역사는 기술의 발전이 아닌 인물들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이 책은 잊힌 인물 18인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예컨대 1920~30년대 프랑스 시골의 인쇄공 낸시 커나드, 18세기 영국에서 인쇄와 제지를 다룬 존 배스커빌과 아내 세라 이브스처럼 역사서에는 거의 언급되지 않던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들이 겪은 시행착오, 실험, 실패와 성공은 고스란히 책의 형식을 변화시키는 여정으로 이어진다.

흥미롭게도 책의 기술은 늘 선형적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었다. 새로운 것이 늘 더 나은 것은 아니었기에, 과거의 방식이 다시 주목받기도 했다. 20세기 초 도브스 출판사는 15세기 베네치아 활자체를 모방했고, 2000년대 초 ‘야만적 메시아’는 17세기 스타일의 책 형식을 참조했다.

책은 ‘래디컬(radical)’이라는 단어가 ‘뿌리’를 뜻하는 라틴어 ‘라딕스(radix)’에서 온 것처럼, 책 역시 과거로부터 뿌리를 내리고 새로운 형식으로 피어나는 존재임을 강조한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인쇄와 제책이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사람과 시대, 문화의 집합체임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